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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장13절-22절매일성경 2023. 11. 7. 07:49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의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므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고통. 욥에게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욥의 소와 나귀들, 낙타와 종들이 죽고, 자녀들이 죽었다.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성경에서 할애하고 있는 분량이 많지 않지만, 욥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그 상실감과 당황스러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였던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어느 누가 그 고통을 공감하고 그 고난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가축들과 종들과 자녀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욥에게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예배이다.
주신이도 주시며 거두신 이도 주시니라.
결코 쉬운고백이 아닐 것이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 있을 수도록,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인생이 흥황하고 잘 나가고, 많은 것을 이루었을 때 겸손히 그것이 하나님이 하셨어요! 하는 것은 쉬울 수 있다.
그렇지만 실패하고, 넘어지고, 잃어버리고, 상실하고,
그것이 어떤 자신의 죄와 게으름과 교만과 나태의 결과가 아닌 이상,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거두신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고통과 고난 가운데 범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여러 고통과 고비들이 있었다. 가장 큰 고통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죽음이다.
3여 년간 암 투병을 끝내고 2008년 5월 아버지는 그렇게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온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을 때.
동생이 서울에서 축구를 하며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라고 하시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그다음 화요일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곁에 조금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있다.
토요일에 장례예배를 치르고, 나와 동생에게 먼저 자라고 하신 어머니.
동생이랑 장례식장 한 켠 방에서 누워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도 안 나왔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내가 동생한테 건넨 말.
성광아 괜찮아?
그 당시의 자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가장 먼저 동생이 걱정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했기에, 기숙사 생활을 했었고, 중학생 때 동생과 공유한 시간이 많이 았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하였다.
어머니의 마지막 전화도, 편의점 심야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서 받지 못하였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던 때라 전화도 쉽게 할 수 없었던 터라 야간 알바 끝나고 한국에서 온 착신이 있었지만,
알바가 끝난 시간이 2시여서 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씻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교회 선교사님으로부터 나를 깨우는 전화가 왔다.
나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어머니가 직접 할 수 없어서, 선교사님께 연락이 갔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침에 공항으로 출발했고,
새벽기도로 모이셨던, 선교사님과 순장님 몇 분이 여비를 모아주셨는데, 6만 7천 엔이었고, 그걸로 티켓을 사서 한국으로 갈 수 있었다.
가는 내내 울었다.
왜 하나님 아버지를 데려가셨어요!라는 원망도 있었다. 통영에 홀로 있는 어머니 서울에 혼자 있는 동생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하고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쉽고 후회함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 인생에,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큰 변화를 주었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개개인의 단단함으로 이어졌다.
나는 2008년 1년간 정말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으로 교회 가족을 통해서 체험을 했고, 자라났다.
이때 부터 나는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이 세상에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다.
우리는 욥의 고통을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은 욥의 고통에 비하면 그 크기는 아주 작은 것이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의 욥의 고백은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었을까.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고통과 고난을 겪을 때가 있다.
그럴 때의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소리는 어떤 내용일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
주님의 온전하심, 주님의 완전하심, 주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매 순간의 삶 가운데 주님의 섭리와 통치를 인정하는 살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형통할 때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주님의 은혜임으로 고백하며 겸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통과 고난 가운데에서 주님의 뜻을 묵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망과 불평과 짜증이 마음들을 성령님의 마음으로 다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며
하나님이 찬송받는 은혜 부어주시옵소서.
그 모든 것이 예배자의 삶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